햇살

작성자  
   achor ( Hit: 1614 Vote: 82 )
분류      잡담

아처웹스.는 주위의 건물들 때문에 햇살이 잘 스며드는 공간이 아님에도

오늘 아침은 이상스레 찬란한 햇살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고

그 오랜만의 축복을 가득 누리고 있었다.



이 햇살은 1990년대 후반의 햇살과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겨울날.

아직 녹지 않은 눈송이를 새하얗게 빛나게 했던 그런 햇살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 먹을 생각을 했는데,

어젯밤에 남은 밥과 게맛살, 계란 등을 모조리 먹어치운 덕에

남은 거라곤 라면과 콘플레이크뿐이었다.

라면은 여전히 지겨우니 그렇다면 콘플레이크.



우유를 사기 위해 밖으로 나설 때

나는 아주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대체로 남자들이 입는 그런 길다란 반바지가 아니라

무릅 위 족히 50cm는 넘어보이는 그런 숏반바지였다.

거리 쇼윈도에 비친 내 다리는 아주 섹시하다고 생각을 했다. --+



아침 햇살 하나는 나를 아주 기분좋게 만들어 버렸다.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간 전혀 하지 못했던 빨래며, 청소며, 또 밀린 일들까지도

하고픈 충동을 느꼈다.



지금 이 콘플레이크를 다 먹고 나면

나는 빨래를 할 것이고, 청소를 할 것이다.

어지럽게 늘어져 있던 것들이 다시 제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곤 학교에 간다.

어제는 힘들게 학교에 갔더니 개교기념일인지 뭔지

수업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황당해 하며 그냥 돌아왔던 터.

코메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내게는 현실이 된다.

오늘은 수업도 열심히 들어야지.



어지럽게 늘어져 있던 것들이 다시 제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해야할 일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게 아니다.

단지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을 뿐.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8,614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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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11/06/1999 0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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